주말에 서울을 올라갔는데,
경호군이 이런 이벤트를 마련해 준 덕분에
연말과 새해가 좀 더 풍성해졌습니다.
경호군, 쌩유~

오랜만의 전시회 나들이였습니다.
일요일 예배를 끝내고 후다닥, 교대로 갔다가
다시 김샘과 경호군을 픽업해서 여의도 KBS로 고고싱.
(예전 생각이 솔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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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침침한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백남준의 기운이 싸악, 저를 감싸더군요.
이상하게 백남준샘은 마치 풀어야 할 어떤 과제같은 기분이 들어서
예전에 독일사람이 쓴 논문도 읽어보고 했지만,,,
그 전시회 자리에서 다시 원초적인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당신은 이다지도 유명합니까?

그 곳에서 그림설명해주는 청년은
멋진 말을 많이 늘어놓습니다.
백남준의 스승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인
요셉 보이스나 존 케이지…
그리고 첼리스트인 무어맨 등등..
마치

‘당신들 같은 일반인들이 백남준 전시회에 왔으면
최소한 이 세사람의 이름을 알면 아는 척 할 수 있어요~’

라고 외치듯 그렇게 세사람의 이름을 또박또박
반복해서 말을 해주고 있더라구요.

그리고는 작품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긴 했지만
그 설명 역시 왠지 붕 뜨는 듯한 느낌.
왜 백남준이 유명한지, 그가 왜 위대한지 설명해주진 못하더군요.

01. 소박함.

혼자 백남준의 작품들을 둘러보다가 웃었습니다.
위대함이나 유명함은 특별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소박함에서 오는 것이더군요.
단지 백남준은 사람을 너무나! 좋아했던 겁니다.
그가 참여했던 그룹인 Flxus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개인종목일 수 있었던 예술의 부분을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바꾸어놓았더라구요.
이건 그동안 혼자서 하는 게임인 복싱이 스포츠의 전부이다가
축구라는 새로운 집단스포츠를 만들어낸 것과 비슷하다고 여겨집니다.
뒤샹이 변기통으로 한번의 획기적인 휙을 그었다면
다시 앤디워홀은 그림공장으로 또 한번의 획을 그었다면
백남준은 단체전이라는 이름으로 획을 그은 셈입니다.
그의 작품이름만 보더라도 그 주변의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수 있을 정도니까요.

그 시작은 단지.. 백남준은 사람을 너무나 좋아했던 것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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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위대함.

하지만 맨날 술만 마시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만한다면
그건.. 그냥 양아치에 불과한 것입니다.
백남준의 유희에는 철저한 예술적 전통이 깔려있습니다.
‘正’에 ‘反’ 하기 위해선 ‘正’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그 끝을 보고나서야 ‘反’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죠.

전 백남준 작품 중 주파수로 맞추어서 전시를 하는 그 나라의
공중파가 나오게 한 것들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간의 예술작품이 가진 폐쇄성과 권위.
그저 식물인간처럼 고이 모셔갔다가 고이 전시되는 그림이나 작품들.
이런 기존의 방식에 정말 획기적인 방법으로 껄껄껄. 웃어대고 있구나 하는 것을요.

예술은 문화이기 때문에 당대의 문화에 살고 있지 않고는
사실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림 한장에 녹아든 그 거대한 작가의 백그라운드가 있기 때문에
역시 그 그림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며
제대로 감상하려면 그 작가의 백그라운드의 철저한 연구가 수반되어야겠죠.
그래서 예술은 스스로를 그 고귀한 작업에 가둬버립니다.

그러나 당대의 공중파를 주파수로 맞춰 나오게 한 작품들은
감상자에게 그런 백그라운드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주고
그냥 즐기게끔 합니다.
늘 보던 소프드라마가 나오고 쑈가 나오는데..
더 이상 그것을 고귀하거나 우아하게 볼 필요가 없는거죠.
그저 친근할 뿐입니다.

03. 유희

예전에 백남준샘이 작고하셨을 때 쓴 글에서 미처 잘 몰랐고
애매했던 부분들이 전시회를 보면서 해소된 느낌입니다.

이젠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백남준 선생님, 참 잘 놀다 가셨습니다.’

ps. 아마도 니체가 초인의 조건으로 꼽았던 ‘어린아이의 유희’개념에
가장 흡사했던 사람이 아닐런지 하는 생각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