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이 있는 디자인

디자인에 공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을 초반에 의욕적으로 시작을 할 때에는 사실 그런거 잘 몰랐습니다. 그저 디자인은 감각이지, 그러면서 기실 직관만을 믿고서 사각형의 크기를 정하고 제목의 위치를 정하고 해서 낸 결과물이 그다지 혹평은 받지 않아왔으므로 더더구나 불확실한 감각 하나만을 믿고서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클라이언트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제가 낸 결과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해주길 원하더군요. 그리고 디자인은 감각이라고 믿던 시절에는 단지 이미 작업된 디자인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주는 ‘말빨’로 녹여주면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으로 쉽사리 이어지더군요. 솔직히 몇년간을 그런 사고방식으로 작업을 해왔고 또 그런 생각으로 고객들에게 작업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감각이 쇠퇴해서인가요? 예전도 그렇고 지금도 백지 위에서 뭔가를 그려내는 건 쉽지 않음을 느끼지만 뭔가 공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정말 그런 것이 있을거라는 믿음마저 생깁니다. 또한 공식이 있다면 불필요한 의미부여가 아니라 그 공식에 따라서 어떻게 답이 나왔는지 풀이과정만을 알기 쉽게 얘기해주는 것이 고객에 대한 설명이 되겠지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최근의 그리드시스템에 따라 작업을 하게 되면서였습니다. 항상 디자이너는 백지 위에서 가상의 레이아웃들을 구성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방법론을 개개인이 갖고 있던지 간에 그 안에 가상의 가이드선을 그리고 각 타이틀과 사진박스들을 위치해봅니다. 그리고는 고민합니다. 매번 동일한 규격의 백지위에 건축을 하게 되는 셈인데 여기에 설계를 하는 공식 같은 것이 있으면 참 편하겠다.는 식의 생각. 

사실 어찌보면 그리드자체가 추상적인 개념일 수 있습니다. 여백은 어떻게 설정을 하며 그것을 2단으로, 혹은 3단으로 갈지 어떻게 결정을 한단 말입니까? 단순히 그것은 여러 레이아웃을 설계해 본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어떤 유형의 궁극적인 그리드가 있다면 정말 그것은 사람들에게 세련되고 좋은 디자인의 기초설계가 될텐데 말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면 그런 그리드 설계의 메타개념으로의 기하학이 유추가 됩니다. 각 가이드선과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기 위해서, 단순히 예전에 이렇게 해보니까 좋았더라의 추상적인 이유가 아니라 수학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의미로서의 기하학. 

바로 그리스의 신상들이 그렇고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인물스케치, 그리고 르 꼬르뷔지예의 건축설계에서 동일하게 반복되어 나타나는 황금율이 그것이이겠지요. 황금율의 비율을 유지하면서 각 욧소들이 그 비례안에서 반복되고 대칭되는 식의 디자인. 디자인이란 것 자체가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은 형태를 가지고서 명확한 정보성과 명시성을 가져야 한다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기하학의 비율에의 귀결은 어쩜 당연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해하게 됩니다. 왜 아름다움이 질서이고 그것들이 수학인지. 왜 그렇게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수학을 통해 플라톤의 이데아, 혹은 신성에 접근하고 밝혀내려 했던 것인지를요. 

이런 철학적인 접근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각종 비율에 근거한 기하학. 그 기하학에 기초한 그리드, 그리고 그 그리드에 탄탄하게 기초한 요소들의 배치. 인도에서 얘기하는 백지 공간위의 맥을 짚어내는 디자인들이 이런 메타요소 위에 위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확실히, 타이틀과 그래픽의 위치에 따라 어떤 것은 점 하나 찍을 곳이 없이 팽팽한 긴장감을 드러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너무나 느슨하여 휑하게 보이게 하는 디자인이 분명 있습니다. 바로 그런 긴장감과 채움의 맥이 위의 기하학을 통해서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제게 생각하는 디자인의 공식입니다. (인도의 신을 그리는 매뉴얼에는 이러한 맥을 잡아내는 비율로 표시가 되어있더군요.) 그리고 아래에서 잠깐 언급했던 스기우라 고헤이가 얘기하는 우주적인 진리와 통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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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잿빛하늘

    공식이라… 그것도 기하학과 수학이 맞닿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면 일견 새로울 것이 없다 생각되어 집니다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젖어있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새로운 반발형태일 수도 있겠네요. ^^

    • 소박형일

      (잿빛하늘)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다양식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궁극의 하나를 다시금 얘기하는 것이요.. 그렇지만 예전은 그 궁극의 한가지를 얘기했다면 현재에서의 논의는 궁극의 다양한 변종이 있을꺼란 기대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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