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을 보고서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그 상황에 들어가있지 않는 이상 그 것에 대해 3자의 눈으로서만 보고서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미 평준화된 교육으로 소위 말하는 ‘일반’의 시각을 안경처럼 쓰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그들과 좀 더 다른 상황이라고 해서 자신들의 세계나 자신들의 교양수준까지 사람들을 끌어올리려는 것은 인위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회봉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뛰어들지 않고 참여하지 않은 ‘저 사람’의 현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수 없다는 것. 그 현실이 단지 내가 보기에 안좋아보일 뿐이지 본인에게는 긍정의 의미로, 혹은 삶의 의미로, 혹은 여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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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paullee338?Redirect=Log&logNo=20089817236)

그래서 예전에 발표되었던 성매매방지법에 대해서도 극히 회의적이었습니다.
성매매피해자들을 단순히 ‘피해자’정도로만 보고 그들을 계도하려는 ‘계몽’적인 성격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권력을 휘두르려는 사람밖에는 보이지 않더군요.

사회의 제도는 이미 돈이 없으면 타인과의 경쟁에서 뒤질 수 밖에 없으며, 미디어 매체에서는 돈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화려하고 즐겁고 예쁘게 사는지를
단단한 사슬로 엮어놓으면서 정작 ‘이것은 나쁜 것이야, 너희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해’ 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매매자들의 통계를 보면 이미 억압에 의한 성매매자들은 줄어들고 있고 반대로 돈을 벌기 위한 생계형 성매매자들은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를 보여줍니다. 즉,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라는 사회의 은밀한 메세지들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력은 도덕과 윤리에 어긋난다고 방망이를 휘두르긴 하지만 이미 새로운 윤리로 매매자들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최소한 성매매에 대한 판단에 앞서 그렇게 밀려나오게 된 개별적인 의미에 대해 세심하게 귀를 기울인다면 좀 더 나은 방지책들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 거 같아서 사족을 덧붙입니다. 성매매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제도장치의 개선이 없이 성매매만을 가지고 처벌하는 것은
또 다른 음성적인 매매들을 더욱 부추키는 꼴이 된다는 요지입니다.)

그러나 그런 성매매가 그냥 삶 자체고 현실이라면 어떨까요?

그것을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최소한 그런 현실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다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삶은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니까요.

바로 다큐멘터리 ‘꿈꾸는 카메라’는 무기력해보이지만 한 개인이 사창가의 아이들에게 여러가지의 것들을 보여주며 선택을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고 있습니다. 결코 아이들에게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아이들을 끌어다가 이것만이 최선책이야 라고도 또한 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상황에서 최선일 수 있는 선택들을 보여줍니다. 결코 그 안에서라면 볼 수 없었던 상황들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선택하게끔 끌어줍니다. 그리고 그 매개체로 작가는 ‘카메라’를 선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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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어린 사진작가들 (출처 / http://www.kids-with-cameras.org/kidsgallery/)

재밌습니다.

홍등가의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게 해서 자신들의 상황들을 찍게 만들었다는 것이요. 카메라란 것은 나무에 둘러싸여 나무밖에 볼 수 없는 자신에게 숲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굳이 소크라테스의 격언을 들지 않더라도 자신의 현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 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들로 작가는 아이들의 삶의 의미를 확대시켜주고 싶어했습니다. 아이들 역시 그 카메라를 통해서 소소하게는 자신들의 모습과 삶을 담아내게 되었지만 점차로 카메라가 아닌 자신들의 사진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을 깨달아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엔 삶의 선택은 자신입니다.

A와 B를 놓고서 A가 더 좋은 것임을 알면서도 B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수지트라 역시도 자신이 없으면 당장에 먹고살 수 없었던 가족의 끈을 더 놓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이것은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며 계몽의 의미를 가지고 다가갈 것도 아닙니다. 우리보다 안되었구나 할 문제도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선택의 문제이며,
그들의 최종선택에 대해 우리는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할 것은 보다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많은 선택지들을 주어서 좀더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가도록 말그대로의 ‘Guidance’ 역할을 해줘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사진 보러가기 >>

Born Into Brothels – Trailer from ro*co Films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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