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쿠, 계속 게으름만 피다가 결국엔 학기 시작하면서 다가오는 위기감에 하나둘 책도 구입하고 독서도 시작합니다. 책이 나오자 마자 보고싶은 마음에 덜컥 구입은 했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손에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가 출퇴근시간에 벗삼아 다 탐독했습니다. 책 표지에는 출판사의 기획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라고 되어있는데.. 이미 어느정도 진중권씨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생각하면 굳이 저런 사족을 달았어야 하는 의문이 듭니다. 책 내용은 정말독창적인 해석이다라기 보다는 기존의 해석들을 소개하면서 철학과 관련한 시각들을 좀 더 덧붙인 형식인데요. 글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독창적이라기보다는 딱, 진중권씨답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는 이야기이구요. 독창적이라는 표현을 빌어서 과한 해석이 남용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적당할 만큼의 해석, 말그대로의 지적유희를 즐기기엔 충분한 내용인 거 같아요.

여러편의 작품을 가지고 설명을 해놓았는데 제가 제일 맘에 들었던 작품들은 요하네스 굼프의 ‘자화상’, 코르넬리스 노르베르투스 기스브레히츠의 ‘뒤집어진 캔버스’, 마지막으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개’  였습니다.

이 중에서도 압권이었다면 단연코 요하네스 굼프의 ‘자화상’을 꼽을 수 있습니다. 자아에 대한 부분은 제가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진중권씨가 화가의 자아를 반영하는 대상으로서 자화상을 풀어내면서 다시금 캔버스에 자신의 像을 투영하는 것을 주체의 복제로, 보들리야르의 시뮬라크르개념과 그 반영하는 타입에 따라 신경정신학의 부분까지 이끌어내는 것은 일종의 쾌감이기까지 했습니다. 내용도 명료했던 탓도 있었지만 일상적으로 보아왔던 그림들이 새로운 의미로 변용될 때의 즐거움이 더욱 컸던 거 같습니다.

일종의 트롱프뢰유라는 ‘뒤집어진 캔버스’는 사실주의와는 조금은 다르게 극사실같은 회화를 추구하면서 일종의 오락으로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트롱프뢰유와는 다르게 어떤 사물을 지칭하려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직접 그 대상이 되려고 한다는 점에서 일면 모더니즘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면 외형상으로만 봤다면 17세기의 작품이 아니라 현대의 어느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별로 손색이 없어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개’라는 고야의 작품은 별다른 말이 .. 필요없을 듯 합니다. 그가 말년에 검은회화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그렸다고는 하지만 그런 상황이나 여건들이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복잡다단한 감정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거 같습니다. 회화가 회화 자체로서 우리에게 말을 건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만 모래더미 속에 절망적인 눈빛의 강아지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은 기나… 긴 여운을 남겨줍니다.

오랜만의 즐거운 그림산책이었습니다. 특히나 고야의 ‘개’를 만난 건 제게는 행운같은 일이네요. 조만간 저렴한 프린트물이라도 구해서 집 한구석에 걸어놓고 침묵 속에서 가만히 바라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