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제게 박우혁 교수님은 ‘디자인컨셉’이란 단어로 기억될 것입니다. 포트폴리오부터 과제까지 보시자마자 항상 하시는 첫 마디가

“디자인컨셉이 뭔가요?”

입니다. 그 질문에 잘 넘어갔다 싶으면 다시 질문이 들어옵니다.

“여기 어디에 디자인 컨셉이 적용되었나요? 이 사진은 왜 여기에 위치한거죠? 왜? 왜? 왜?”

몇 주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속도 폭폭하고 그 분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궁금증에 집어 들게 된 책입니다. 사실 예전에 아직은 낯설었던 스위스로 디자인 유학을 갔다오신 분이 쓰신 책이라며 광고가 나왔을 때에 구입할 뻔 했습니다. 그러나 세간의 이야기가 디자인 여행이라는 데 디자인 이야기보다는 개인의 에세이같은 여행기가 주를 이룬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부러 외면해왔던 책이기도 합니다. 이유야 간단합니다.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니 읽으나 마나한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이지요.

그러나 이번에 구입하게 된 계기는 좀 달랐습니다. 내용이 궁금하기보다는 디자인 컨셉만을 강조하시는(?) 그 분의 편집디자인은 어떤 것인가? 하고 궁금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는 집어 든 노란색 커버의 책에는 아기자기한 기하학적 도형(주로 원과 직사각형이기는 했지만)과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의 에세이와 많은 양의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디자인컨셉이란 걸 의식하고 읽으려고 했습니다.

‘타이포그래피에도, 레이아웃에도 감정과 느낌이 있다는데 이것은 어떤 감정으로 작업하셨을까? 왜 여기에다가 이런 원들을 늘어놓으셨지? 전체적인 책은 어떤 디자인 컨셉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는 그닥 가슴에 와닿지 않는 내용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딱 부딪히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물론 디자인의 첫번째는 텍스트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 기본적인 중요성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보는 것이었구나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뭔가 확연하고 명료하게 떠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텍스트와 도형들, 그리고 사진들이 어떻게 그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야기하려고 어떻게 애를 쓰고 있는지 그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텍스트를 읽어나가면서 그 주제들을 강하게 부각시켜주는 것. 잘된 디자인이란 마치 라디오에서 여러 성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양한 장면을 머리 속에 떠오르듯이 별다른 장치들을 하지 않아도 그 주제와 생각들을 강하게 전해주었습니다. 이것이 디자인 컨셉의 힘이겠지요? (그런데 아직도 감은 안잡힙니다. 맨날 잡혔다가 도망가요…)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았지만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눈물의 타이포그래피 라는 장이었습니다. 바젤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한 것이 A4사이즈를 아는 것과 자와 칼, 종이로 알파벳을 하나하나 잘라서 붙이는 것만 몇달을 했다고 하니… 오히려 편해졌다고 하는 현대가 컴퓨터에서 쉽게 장평이나 자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유로 쉽게 타이포그래피를 배치해 온게 아닌가 싶습니다. 필름카메라 가진 사람의 슛이 신중할 수 밖에 없고 디지털에서는 슛을 남발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오히려 타이포그래피가 풍부해진 현대가 정작 타입을 홀대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고민합니다. 과연 디자인컨셉에서 책의 모든 것들을 형태로 파악해내어야 한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지… Think more, Design less. 얼마나 많이 생각해야 그것이 디자인으로, 다시 레이아웃으로 실타래 풀리듯 술술 잘 풀릴까요? 요새는 의미의 바다 속에서 헤메는 중입니다.

그나저나 벌써 두권째입니다. 100권까지 갈라면 갈 길이 멉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