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옛날의 ‘丹’의 책을 연상시키는 듯한 ‘원더보이’,

현재의 시대상을 너무나 잘 반영하고 있는 ‘방주로 오세요’.
닮은 듯 닮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분명 내용은 다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구석이 있다.

소설엔 주인공이 나오고 그들이 처한 문제들이나 각자의 상황들이 있다. (혹은 생긴다.)
그런데 그것을 대하는 방법들이 참 상이하다.

‘원더보이’에서는 결국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방주로  오세요’는 끝까지 저항하며 외면으로 적극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영화 미션의 경우와도 비슷하달까?
같은 상황을 가지고 한 신부는 신의 뜻을 붙잡고 전쟁 중에 예배를 계속 드리며,
다른 신도들은 여기에 맞서 항거해야 한다고 하는 것.

내 경우엔, 자꾸만 표현하기보다는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고등학교 때 일이 생각난다.
교회에서 한 아이가 했던 말.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그 당시엔 나는 표현하지 않아도 그 속의 내공은 누구라도 알아준다. 라는 사고방식을 아주 강하게 가지고 있었고
물론 그런 생각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신념이 너무 강했나보다.
지금은 그런 표현의 수위를 가지고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결국 나의 신념을 어느정도 굽힌 것으로
표현을 해야만 이 곳에서는 살아남겠구나 하는 위기의식에서였다.

그래도, 아직은 ‘방주로 오세요’처럼 뭔가에 대해 적극적인 표현을 한다는 것.
마음 깊은 곳에서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아예, 신비롭고 비이성적이긴 하지만 안으로 조용히 침잠해있는게
더 낫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그런가?
책 ‘丹’을 읽을 때 코웃음을 쳤던 부분이 있었는데
수련하는 도사들의 경우 앞 날을 보는 경우가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당시의 상황에 항거하지 않았던 것은
또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았다는 구절이 있었다.

예언도 하지 못하면서 앞날도 하지 못하면서
표현하지 않는 것은 또 어떤 심보야. 쳇.

아마 심성을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지금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란 부끄러운 고백도 해본다.

ps. 벌써 쓰레기차가 다닌다. 이렇게 오늘 밤도 하얗다.

ps. 표현한다와 행동한다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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