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지는 꽤 된 거 같다. 얀치홀트의 명저, 타이포그라픽 디자인.

사실 읽으면서도 얼마나 이해했는지조차 모르게, 디자인은 하고 있다고 하지만 조판, 활판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읽기는 무척 힘들었던 기억만 난다. 단지 지금에서야 조각처럼 남아있는 기억이라고는 비대칭 레이아웃을 주장하기 위해 황금율을 사용해서 디자인에 있어서 탄탄한 논리적 근거를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펭귄북의 아트디렉터였고 무려 26세에 타이포그래픽에 관한 칼럼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디자인사상사와 관련된 책을 통해 다시금 얀치홀트의 부분을 읽으면서 과거 나의 무지함을 깨달았다. 혁명가, 혹은 역사 속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끊었던 사람들이었던 것. 얀치홀트도 단지 명료함을 최우선으로 해서 산세리프체를 사용하고 비대칭레이아웃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외에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라, 그게 정말 대단!! 한 거였다.

이를 위해서는 디자인사에서 어떻게 예술 속에서 기술이 적용되면서 디자인으로 바뀌는지, 그리고 자연을 보는 태도에 따라 러스킨과 윌리엄모리스에서 시작된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아야 하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윌리엄 모리스의 아르누보 – 데스틸 로 이어지는 일련의 장식성에서 그 장식을 버리고 명료함을 위해 산세리프의 탄생이 나온게 된 것이다. 자연에 대한 태도를 초기에는 장식성에서 찾았다면 얀치홀트 – 사실은 그 이전 바우하우스부터 차츰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거 같다. – 는 자연을 하나의 기능성, 형태로 보고 과감히 과거 역사를 단절하고 새로운 것들을 제안한, 혁명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현대 디자인 역시… 영혼없는, 근거없는, 단지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면 사람의 심리나 시장트렌드에서 찾는 것이 전부인 이런 디자인에 과연 과거를 끊는 혁명가가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아직도 우리는 얀치홀트의 그림자 아래 살고 있는 것이다. 왠지 선배라 부르고 싶은 그 양반에게 미안한 감정이 든다. 우리는… 생각이 있는걸까? 하는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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