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하지 않은 사람의 삶

현대의 특징인가? 일반론에서 벗어나 각자의 개별성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왕의 역사나 주류국가의 역사보다는 주변의 역사들이 더욱 빛을 발한다. 한 때에는 영웅들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소개됐지만 이제는 그들을 받치는 일반인들의 모습들에 더욱 힘을 받는다. 세계를 리드하는 영웅들의 고민들도 깊은 것이겠지만 그것들을 이루게 하는 일반인들의 고민 역시 만만치 않으리란 각성때문이다.

일반론으로 따지자면 모든 세상은 영웅의 역사가 되겠지만 영웅이라고 치켜세워주는 대중이 필요한 법. 그 대중들을 하나하나 들추다보면 역사만큼이나 다이나믹한 개인의 역사들을 볼 수가 있다. 고산자 김정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쉬이 역사의 뒤안뜰로 묻혀 ‘대동여지도’의 제작자로만 알려져있던 사람이 소설로, 면면이 켜켜히 들추어보다 보니 조선실록에 비견할건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사람의 삶이란 건 다양하며, 개인의 삶의 무게만큼이나 진중하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사람의 삶은 동일하다

그럼에도 개별적인 삶의 다양성 밑에는 고고한 큰 삶의 흐름이 멈춘듯 흐르고 있으니 그건 조선시대나 지금에서나 변치 않는 삶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내가 내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의 자각. 그래서 소홀히 할 수 없고 열심히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명령. 열정이라고 불리든, 성실이라고 불리든, 여태 인생을 지나 온 선배들의 땀이 밴 발자취며 여직껏 열심히 달리고 있는 후배들의 삶을 보자면 무시할 수 없는 큰 흐름이다.

동일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런 같은 토양 위에서 자라난 우리는 삶을 살아냈고 살아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린 자식놈의 입에서 갑자기 ‘아빠, 우린 식구잖아’ 라고 하는 것처럼 나랑 다를 바 없는 – 영웅도 아니고 왕도 아닌, 나랑 같은 삶의 기반을 공유한 사람의 삶을 되짚어본다는 것. 나에겐 동일성을 기반으로 큰 공감을 불러일으켜준다.

막연히 그림으로 접했던 동국여지도

동국여지도. 교과서에 힐끗 본게 다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역사시간, 선생님은 왜 그렇게 지루했고 시간은 더디게 갔으며 옆 짝꿍의 볼펜 돌리는 소리는 어찌나 귀에 거슬리던지. 도무지 집중할래야 집중할 수 없었던 국사시간. 잠깐 보였던 지도. 김정호라는 사람이 만든 지도라는 거 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지도였다.

하지만 사람의 삶의 무게를 등에 지고 보니 참으로 위대한 지도이더라. 실측을 하기 위해 누구도 시킨 일이 아니면서도 본인이 굳이 해야 하겠다는 당위를 가지고 헤맸을 그 몇년의 세월들. 교통수단도 변변치 않았을텐데, 그 깊은 산 골짜기를 두루 다니며 쉬었을 그 조국의 숨들. 고스란히 종이 위에 그려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거기에 국가만이 소유해야 했던 지도에서 온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토록 열정을 가지고 살아냈다는 것만으로,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왠지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같은 조선인으로서가 아닌, 그냥 같은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동안의 나의 게으름을 탓하는 김정호의 말은,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선배의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생존의 문제를 맞이했다면, 이제는 생활의 문제를 맞이한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어떻게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내야하는가? 란 큰 질문을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