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

무분별한 소비를 조장하는 현대 디자인에 대한 비판은 일리가 있고, 디자이너들은 이를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마땅하다. 그렇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디자이너 입장에서 일부 변명의 여지가 있다. … (중략)… 사실상 문제의 원인은 디자인을 그렇게 만들도록 한 현실사회 즉, 그런 디자인을 요구하고 운영한 자본가들이다. 1

8998656183_1서운했습니다. 디자이너가 그렇게 주체적이지 못할 만큼 자본가들의 손에 휘둘려왔단 말이잖아요. 좀 더 나가자면 현대의 디자이너들은 참 주체적이지 못하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자본주의를 자본가의 탓으로만 돌리다니요. 소비주의를 소비자의 탓으로만 돌리겠습니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철학자로는 두명을 손꼽습니다. 나르니아연대기의 루이스와 프란시스 A. 쉐퍼입니다. 프란시스 A. 쉐퍼는 주로 신학생들 사이에서 읽히는 책들인데 현대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여느 철학자들 못지 않습니다. 특히 그의 책 중에서 ‘우리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기독교 세계관의 입장에서 철학, 문학, 예술 등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에 대한 추적을 보여주고 있는데, 거기에서 프란시스 A. 쉐퍼는 고백합니다.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결탁해서 지금의 교회를 만들어냈다구요. 그것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은 지금의 교회에서도 보지 못한 용기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다운로드

 

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은 어느 철학자의 책에서도 그런 말은 나옵니다. 디자인의 태생은 참 아이러니 하다구요. 모던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 그리고 그의 스승이라 여겨지는 존 러스킨 조차 당시의 이데올로기였던 마르크스주의자였거든요. 그런데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디자인의 모습이 또한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자식이 근대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 이름의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을 끊임없이 괴롭힐까요?

하지만 정작 디자인사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 역시도 당시의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대안으로 내놓은 것들이 대중의 예술이었습니다. 미국의 대중문화, 독일의 독일공작연맹등을 거치면서 디자인은 각 나라의 상품판매를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긴 했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도 기존의 세태를 비판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고 한 수많은 선배들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페니 스파크는 이야기합니다. 디자인의 본질은 창조적이라고요. 자본주의에 디자인이 봉사하게 된 것은 문화적인 체제와의 상호교류 속에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즉, 디자인은 결코 비주체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적이며 선전(propagada)적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의 상황들 – 정치와 경제, 체제와 문화 등의 상호 교류 속에서 디자인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불가피하게 자본주의 체제에 봉사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중요한 방법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디자인의 본질적인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받쳐주는 문화적인 체제와의 상호 교류의 결과로 인한 것이었다. 본질적이고 실질적인 면에서 디자인은 단순히 창조적인 활동이다.2

모던 디자인의 태생은 용기에 있다고 봅니다. 물론 현업에서 자본주의와 함께 동거동락하며 지내온 디자인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디자인은 주류의 흐름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하고 용기있게 혁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끌어 왔으며, 지금 우리의 디자이너들은 그런 혁신을 부르짖었던 선배들의 수혜를 지금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겐 책에서 봐왔던 윌리엄 모리스를 비롯한 수많은 디자이너들과 스튜디오들은 그냥, 쓸모없는 이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혁신과 용기는 주체적인 생각과 역사에서 비롯됩니다. ‘영국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에서 제일 맘에 들었던 것은 최범의 추천사 제목이었습니다.

우리는 서양디자인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 3

찰스 임즈가 1962년 인도에 관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인도는 다른 나라들이 저지른 실수를 모두 반복할 필요가 없다.

이미 실수라면 우리보다 앞선 선배들이 모두 하고 왔습니다. 제대로 공부한다면 그런 실수를 다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디자인이란 것이 얼핏 보면 기교나 숙련된 장인의 모습이 떠오르지만 유럽의 디자인은 그 모양새가 나오기 이전에 분명한 사상과 역사에 그 출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술과 예술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서 디자인은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제 흉내내기는 그만하고 제대로 공부해서 선진 디자인 나라가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주체적인 디자인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ps. 전통적인 디자인이라고 해서 우리의 것을 찾는 것 역시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이제와서 오방색을 찾고 한옥의 곡선미를 찾는 건, 시대착오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독일이나 여타 다른 유럽은 1,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마무리한 일이잖아요? 전통이 힘이 아니라 핵심을 뚫는 사상이 디자인의 핵심이고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교나 표현은 생각의 표현입니다.. 생각이 얕으면 얕은 표현이 나오고 깊으면 깊을 수록 표현은 우러나오는 법입니다.

 

Footnotes:
1. pp.44~45. 윤여경, 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지콜론북)
2. p.238, 페니 스파크, 이순혁 역. 20세기의 디자인과 문화.
3. p.4, 윤여경. 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

← Previous post

Next post →

1 Comment

  1. 익명

    ‘생각이 깊으면 깊을 수록 표현은 우러나오는 법입니다’ 엄청난 책임감이 느껴지게 하는 문장이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