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샷 2015-02-05 오후 4.05.03

 

1. 욕망이란.

아잔 차의 제자, 아잔 브라흐마의 책,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코끼리를 가지려면, 코끼리를 키울 공간이 필요해지고,
코끼리를 먹일 사료가 필요해지며,
그 외에 코끼리를 씻길 도구며 기타 다른 여러가지
물건들이 필요해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다시말해, 소유에 대한 욕망은 다른 욕망을 낳기 때문에
가지고픈 욕망을 없애기만 하면 그 욕망을 없애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2. 아이에 대한 욕망.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도 이와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점점 큰 규모의 돈이 필요해지게 됩니다.
최소한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는 젖병을 쓰다가
이유식기 세트를 들이게 되고
배변훈련을 위한 장비를 구입하고
고급 장난감을 들여놓고는
만족감에 휩싸입니다.

아잔 브라흐마처럼 욕망의 근원인 아이를 없애버릴 수는 없는 일인지라
모든 지출에는 현재의 경제상황과 어울리는 약간의 타협이 필요해집니다.

그래서 아마, 부모들이 피곤해지는것이겠죠.
아이가 낮잠잘 때, 아님 밤에 잠을 자고 난 이후에
가성비가 훌륭한 물건들을 눈이 빨개지도록
검색하느라구요. (물론 저도 빠지지 않는…)

 

3. 포커스가 어디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돈 쓰는데
뭐라고 할 사람 없을겁니다.
그리고 모두가 잘 크길 바라는 마음일 겁니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은 마치 낚시꾼들이 장비경쟁하듯,
사진찍는 사람들이 카메라 경쟁하듯,
그렇게 육아용품 경쟁을 합니다.
육아용품회사에서 부추키고,
또 파워블로거들이 부추키고,
또 그것을 사용하면 아이가 금방이라도
기저귀에 싸던 똥을 배변기에 눌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 아이가 경험할 엄청난 경쟁과 스펙전쟁의
일종의 전초전인거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린, 포커스가 뭔지 알잖아요.
우리 아이, 잘 컸으면 하는 바램. 하나.

 

4. 대기업 자식?

고만고만한 생활에서
벌써부터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걱정합니다.

남자아이들은 결혼해서 집 한채 해줘야 할텐데,
여자아이들은 혼수를 하나 해줘야 하는데
보험회사들은 이를 위해
미리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수선을 떱니다.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돈 때문에 못하게 하는 부모는
이미 나쁜 부모가 되버렸습니다.

하지만 욕망은 다른 욕망을 낳듯이
우리가 조건들을 보기 시작하면
이미, 우리는 패자일 겁니다.
항상 더 좋은 걸 해주지 못해서
죄책감에 휩싸인 부모가 될 것입니다.

혹여라도 아이가 원했던
고급장난감을 해주지 못해서
밤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대기업 자식이 아닌 걸
속상해할 겁니다.

 

5. 우린 포커스를 알잖아요.

하지만 우린 알잖아요.
이 모든 것이 우리 아이
잘 크길 원하는 마음이라는 걸요.

그것을 굳이 좋은 장비(?)로
표현할 방법은 없을 거 같습니다.
그럴수록 기본을 돌아봐야하지 않을까요?

육아란 건 생각해보면,
부모-아이와의 관계가 가장 기본이며,
어떻게 보면 그런 장비들은
아이에게 포커스가 아닌,
부모를 편하게 하는 것들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니, 부모-아이의 기본적인 관계에서
조금 더 거추장스러울수도 있는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6. 그래서 제목이 맘에 듭니다.

내 아이에게
머리가 좋아서 얼굴이 잘생기거나 몸의 비율이 좋거나 하질 않아서
우월한 유전자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고만고만한 생활에
재산을 물려주거나 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이와의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아이와 종이신문을 찢으며 놀아도,
근처 동네를 1~2시간동안 산책을 해도,
시장의 활어집 앞에서 움직이는 돔을 몇십분이고 지켜봐도,
굳이 화려한 장비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즐거워합니다.

생각해보니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장비는 시간이었습니다.

 

7. 꼭 스칸디만의 이야기는 아닌, 평등.

책에서는 기본적인 남녀의 평등,
사람에 대한 존중이 깔려있습니다.
꼭 스칸디만의 이야기는 아닌,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이야기들이라 생각합니다.

굳이 넌 남자니까,
넌 여자니까, 하고서 성역할에 맡는
장난감을 주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난 남자라서, 칼놀이하고
여자라서, 인형놀이 하는 성역할놀이가
더 두렵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기 성에 갇혀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평생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할까요?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의 여성상은
조선 후기 유교주의자들의 기획이었습니다.
우리의 조상은 무척 합리적이고 평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후기에 열녀개념을 중국에서 들여오면서
지금의 시월드의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 개념을 마치 우리의 고정된 문화인 양
아이들이 습득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우울해집니다.

 

8. 꼭 스칸디만의 이야기는 아닌, 존중.

제가 육아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부모-아이를 일종의 지배-피지배관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계몽해야 할 존재를 여겼습니다.

수저질 하나 혼자 못하고,
글도 못 읽고,
음식을 그냥 옷에다 게워내는 존재라니요..
정말 미개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가르쳐야 하고 모르면 혼을 내서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을 내다보니 왠지 내게 복종해야 할 피지배의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리하다보니 내 맘대로 되는 아이들이 어디 있습니까?
아이에게 혼을 낼수록 우는 아이를 볼수록
제 영혼은 더욱 위축되고
생채기가 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혼자서도
뭔가를 해내는 것을 봤을 때,
내가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나,
그 아이와 별반 다름없이 미개하다고 여겨지는
내 존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와 나의 육아는
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팀워크지요.
나도 크고, 아이도 함께 크는 빛나는 시간들입니다.
여기에는 아이를 한 인간으로 생각하겠다는
존중이 깃들여져있습니다.

꼭 스칸디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부모가 주는 사랑만큼이나
존중도 당연합니다.

 

150205

 

9. 그리고 , 사탕데이와 끝맺음.

떼쓰는 아이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나 나옵니다.

마트에 갔는데 갑자기 사탕을 사달라는 아이,
울고불고 떼를 씁니다.
그래서 마트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아이를 설득합니다.
사탕이 이에 안좋다는 것을 이야기해도
역시나 아이는 그래도 사탕을 먹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와 일종의 타협을 합니다.

“이번만이야.”

라는 타협이 아닌,

“그럼 토요일에만 먹자.
그날을 토요사탕이라고 하는거야.”

아이가 이해를 못할 거 같지만,
놀랍게도 이해를 합니다.

이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던 것이,
저희 집엔 텔레비전이 없어서
아이가 만화를 보려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봐야합니다.
그런데 갈수록 그 보여달라는 뗴가
심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해 낸 고안책이,
금요일 애니데이.

놀랍게도 스마트폰을 갖고 도망가는 아이에게

“금요일날 실컷 보게 해불께.
그날은 너만의 애니데이야.”

하면 수긍을 합니다.
금요일에 만화를 보기 위한
일종의 만족지연을
스스로 견뎌내고 있더라구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아이 자신들은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부모가 알아야 할텐데요.
이 책에서 누누히 이야기했던,
존중과 평등한 사고방식에서만이
비로소 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