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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반대자들 중에는 박람회에 전시된 산업상품의 조악한 품질과 과도한 장식을 시각적인 불협화음이라며 비판한 오거스터스 퓨진과 존 러스킨 같은 사람도 있었다. 이들이 산업혁명이라는 불가항력에 맞서려고 했던 최초의 디자인 행동주의자들이다. 퓨진과 그의 동료들은 후대의 반대자들이 윌리엄 모리스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했다. 모리스는 민속적인 단순성을 뛰어난 장인정신과 결합하여 부활시키기 위해 1861년에 모리스 마셜 포크너사를 설립했다. 모리스와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새로운 공예 개념이 사회 통합을 촉진시키는 수단이라며 격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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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초기 디자인 운동은 전 유럽의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일깨웠으며, 아르누보를 비롯하여 20세기의 처음 10년동안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공방이나 독일의 독일공작연맹같은 다양한 표현들이 나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디자인은 아이러니한 시작 때문에 일관된 것들을 논술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근대 디자인사가들은 산업혁명을 비판했던 윌리엄 모리스에게 시작되어 유명한 디자이너 중심의 역사들을 기술했던 것을 보면, 지금에서야 그 이면에 소외되어 있던 산업혁명으로 만들었다는 그 조악한 것들도 디자인으로 보려는 시도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디자인사를 사회사 입장에서 서술하거나 사회적 디자인과 개인의 사물의 디자인을 설명하려는 여러가지 틀(가령 모더니티를 중심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들)들을 만들어내지만 아직은 그렇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틀 자체는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난, 디자인은 ‘반역’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은 뿌리칠 수가 없다. 물론 우리에게 내려오고 있는 일상의 디자인을 무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 그런 ‘반역’의 디자인이 천천히 ‘일상’의 디자인으로 물들여져 리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19세기 말의 디자인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더이상 ‘반역’의 힘을 잃어버리고 자본주의와 결탁해 만들어 낸 디자인이 다시금 그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힘들지만 일생을 일상의 디자인을 위해 바쳤던 윌리엄 모리스, 그리고 그의 스승 러스킨, 토마스 칼라일과 오거스트 퓨진의 사상들을 재조명해봐야 할 것이다.

왼쪽부터 윌리엄 모리스, 존 러스킨, 토마스 칼라일 (출처.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