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규, 착한 디자인 표지

김상규, 착한 디자인 표지

 

p.177

착한 디자인으로 지구를 구한다는 식의 표현은 디자이너의 역할이 몹시 중요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내겐 디자이너들이 책임을 져야할 의무가 있다는 논리로 들린다. 세상의 문제를 디자인 전문가들의 의식문제로 전가하기도 한다. 정말로 디자이너가 문제를 일으켰거나 디자이너가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 있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가? 왜 꼭 디자인으로 해결하려는가?


의문은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 철학이 그래서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아닌가? 특히나 성장에 변화를 거듭해나가고 있는 디자인 분야에서 한 걸음 멈추고 숨을 고르면서 자신의 온 길을 되돌아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이 책에서도 역시 최근에 ‘착한’, ‘에코’, ‘그린’ 등등 여러가지 디자인에 개념이 도입되면서 과연 ‘착한 디자인’이란 뭘까? 라는 고민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변해왔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착한’이라는 개념에 대한 성찰, 우리나라의 경우에 어떻게 도입되고 발전되었는지를 찬찬히 이야기하는 모양새가 맘에 든다.

하지만 약간은 저자의 볼멘 소리도 들린다. 바로 위와 같은 인용문에서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디자인에게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에서야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고, 그 해법마저도 사실은 디자인 내부에서 시작된 소리가 아닐까? 바쁘게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포장을 해오던 시절에도 사실은 꼭 ‘착한’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와의 노선과 다르게 디자인을 주장을 해오던 사람들은 늘 있었다. 그런 선배들의 소리들이 인터넷이란 소통의 흐름에 묻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확장되었고 예전보다는 그런 생각을 가진 현업 디자이너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아마 저자의 생각을 우려한 탓인지 빅터 파파넥은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다’라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문제를 구하는 건 디자이너의 몫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pp 177 – 178

예컨대, 폴 폴락은 “문제는 전 세계 디자이너의 90퍼센트가 부유한 상위 10퍼센트의 수요를 충족시킬 제품을 개발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라고 지적한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그의 말은 디자이너들이 ‘일’하는 구조를 생각하지 않은 판단이다. 의사는 환자와 만나고 교사는 학생과 만나고 변호사는 의뢰인과 만난다. 하지만 직업적인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와 만나게 된다. 이것을 이해하고 다음의 질문에 답해보자. “디자인은 개인과 사회 간의 혹은 개인과 공동체 간의 교류를 반영함으로써, 광고의 메시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어떠한 힘을 가졌는가?” “디자인은 기업을 개별적 존재로 정의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
마우드 라빈 Maud Lavin 은 “아니오.”라고 답한다. “상업서비스 범주 내에서 디자인은 결국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종속”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덧붙인다. 적어도 대량생산되는 제품을 위한 디자인 서비스라면 제조회사 경영자가 클라이언트가 된다. 그들이 상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전에 썼던 ‘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 포스팅이 퍼뜩 생각났다. 이 책을 읽고 보니 그 때 ‘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 저자의 생각이 이 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도 해 보았다. 저자는 디자인이 자본주의에 결코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마우드 라빈의 말을 빌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또 꾸역꾸역 마우드 라빈의 책도 읽어보았다.

마우드 라빈의 말도 역시나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즉, 디자이너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라빈은 한 단계 더 나가서 이야기하고 있다. 디자이너들이 ‘형식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의 내용과 문맥에 점점 더 초점을 맞춰야’ 하며 그런 방식을 통해 디자이너들이 메시지 자체를 제안하는데 더욱 많은 관여, 즉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솔직히 위의 글을 읽고 혹 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작업했는데 디자이너로서는 결국엔 종속적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하지만 마음 한 켠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그 대안과 가능성들을 저자가 마우드 라빈처럼 열어두었으면 더 좋았을 껄, 하는 아쉬움도 든다. 형식에 있어서는 종속적일수는 있어도 그 내용과 문맥에 있어서 디자이너는 언제나 주체적이기 때문이다.

* 뱀꼬리. 책의 교정교열에 문제가 있는지 다른 책보다는 오탈자가 눈에 많이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