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인의 두 얼굴

마우드 라빈, 그래픽디자인의 두 얼굴 표지

책에서 디자이너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솔직한 평을 이야기한 부분이 있다.


광고, 개인주의, 기업의 삼각구도 내부에서 디자인이 위치하기에 적합한 지점은 어디인가? 디자인의 기능은 무엇인가? 디자인은 개인과 사회 간의, 혹은 개인과 공동체 간의 교류를 반영함으로써, 광고의 메시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어떠한 힘을 가졌는가? 기업광고에서 디자인은 기업을 개별적 존재로 정의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회의적인, ‘아니오’이다.  (p.129) 

디자인이라는 직업을 시각 영역의 사소한 부분으로만 국한시키고, 의사소통 영역에서 가지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과 책임으로부터는 멀어지게 한다.  (p.131)

디자이너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의사소통을 위한 개념을 창조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디자이너에 대한 정의는 노골적인 정치적 표현을 억압해 왔다. (p.144)


조금은 비참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하고 받아들여보면, 사실 디자이너는 수동적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디자인이 조형개념에서 좀 더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개념으로 바뀐 지가 하 세월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우리는 ‘서비스업 종사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우드 라빈은 디자이너의 역할 축소를 통해서 정치적 표현을 억압해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가지는 한계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유교사상을 가진 사회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은 유교사상 탓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정치적 수단의 한 방법이다. 심지어 역사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의 역할을 축소해야만 했을까?


디자인은 쉽게 이해되고 공유되는 이미지들을 다시 유포하고 또 널리 퍼트린다. 따라서 디자인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다. (p.130)


실은 우리에겐 강력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라는 강력한 무기. 세상을 변혁시킬수도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나 소비주의에 묻혀서 기생하게 만들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 파급력을 일찍부터 알아챈 선배 디자이너들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도 꿋꿋하게 ‘디자인’이란 도구로 역사상 멋진 일들을 많이 기획했다.

지금을 사는 디자이너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이처럼 막강한 의사소통의 능력이 주어지면서 디자이너들이 직면한 도전은, 형식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의 내용과 문맥에 점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클라이언트에 의존하는 대신에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를 선택할 수 있고, 기업의 일과 비영리단체의 일을 골라가면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디자이너들이 메시지 자체를 제안하는 데 더욱 많이 관여할 수 있었다. (p.130)


마우드 라빈의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흔히들 ‘디자인을 보지 않는 편집자, 글을 읽지 않는 디자이너’라는 이야기들을 한다. 각 페이지의 디자인과 페이지와 페이지의 연결을 봐야 하는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그 많은 글들을 읽기에는 힘들수도 있다. 하지만 마우드 라빈은 이런 우리에게 ‘너희가 디자인하는 메시지의 내용과 문맥을 먼저 파악해야 해!’ 라고 외치고 있다.

왜냐하면 디자이너들이 메시지 자체에서 소외되어 있어서 갑 종속적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좁은 의미의 디자인만 볼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메시지, 즉 커뮤니케이션의 내용을 이해하고 파악해야 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메시지 자체를 제안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