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켄야 『포스터를 훔쳐라 +3』 책 표지

하라켄야 『포스터를 훔쳐라 +3』 책 표지

디자인이라는 것을 표층에 관한 것으로만 여기는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디자인을 성립케 하는 이유가 제품에는 반드시 필요한데, 현재 일본의 쌀 브랜드나 산지에는 디자인을 통해서 호소할 만한 내용, 즉 철학이 희박하다. …..

따라서 만약 일본산 쌀 포대를 디자인한다면 도안을 어떻게 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서 전달해 나갈 쌀의 배경을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쌀 문화를 하나부터 다시 일궈보지 않으면 안된다.  (pp.108 ~109)


위의 표현은 실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나올 수 없다. 이렇게 간단한 말로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게 한다는 건 참, 재능이다.

실은 우리는 ‘표층’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빠른 마감기일과 어떻게든 일을 따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고객의 제품들을 최대한 이쁘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론서나 디자인 커뮤니티에서는 제품이 어쩌고 컨셉이 어쩌고 해도 일단 포장이 이쁘면 클라이언트도 만족하고 회사 내에서의 평도 나쁘지 않다. 그래서 컨셉이나 기획을 제안해도 그것이 실제로 물건이나 제품의 이야기, 철학을 담아내질 못하고 겉면에만 머물다가 미끌어진다. 과연 표층이 아닌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하라 켄야는 아예, 그런 오해는 말라고 한다. 디자인이 그런 것처럼 보이겠지만, 당신이 하는 디자인이 그런 것일 수 있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한다. 디자인하려는 제품이 디자이너를 먼저 설득해야 하는데 그 포인트가 없다면 그 배경이나 문화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제품 안에 그 디자인이 내포되어있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지독히 동양적인 생각이 아닌가!) 

여기에 디자인의 출발점이 있다. 디자인이 단순한 제품의 포장에 불과한 것이 아닌 제품의 배경이나 철학, 심지어 문화마저 재구성해서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그런 ‘대단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하라켄야가 와인이나 위스키의 브랜드에 주목했던 것이 그 배경이다. 특정 지역의 특정 브랜드가 품질로 엄격하게 연결되어서 현재에는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로 구축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고, 자신이 작업하려는 쌀 역시 포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와인이나 위스키처럼 그 정체성을 구축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현실적으로는 디자이너의 이상처럼도 들린다. 디자이너가 그런 브랜드에 관여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을 꾸고 노력해봐야 할 일이다. 디자이너의 역할들이 많이 축소되고 단지 포장전문가로서의 입지만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작업은 이상을 향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디자이너 자신이 자신의 위치를 너무 좁게 잡고 작업을 할 필요는 없으며, 우리 자신이 디자인을 대하는 자세를 크고 넓게 가져가야 현실적인 디자인의 미래도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하라 켄야의 디자인을 대하는 자세가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