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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68년 5월혁명 중에 일련의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포스터를 제작해서 대중에게 뿌린 일이 있었다. 이들은 개인의 작품을 내세우기보다는 단체의 이름을 내세워 활동을 했는데, 바로 ‘민중공방’이 그것이다.

atelierpopulaire3-1024x631.jpg 당시 민중공방 모습. (출처. http://spinsandneedles.com/stuff/2012/03/01/atelier-populaire-renegade-print-workshop/)

시기상으로는 68년에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5월혁명은 알제리 전쟁과 큰 궤를 같이 하고 있다 (58년 군부 쿠데타 이후 드골이 집권한지 10년째 되는 해이기도 하다).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가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싸우면서 알제리의 독립을 반대하는 우익과 찬성하는 좌익이 크게 대립을 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프랑스 4공화국은 막을 내리고 군부 쿠데타 이후에 드골 장군이 집권하게 된다. 당시 알제리의 독립을 반대하던 우익은 OAS라는 비밀군사조직을 만들어서 요인암살과 쿠데타 모의를 했다. 드골정권 아래 경찰국가,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공안통치가 생겨난 것이다.

sadragon_325968_1.jpg 1961년 10월 생-미셸 다리에 걸린 플래카드. “여기 알제리인들을 빠뜨려 죽이다” (출처.  ohmynews.com에서 재인용)

이로 인해 경찰 폭력으로 희생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61년에 일어난 ‘파리학살’이 대표적이다. 당시 파리 경찰국장이었던 모리스 파퐁이 61년 10월 5일 북아프리카인들의 야간통행을 금지하자 알제리인들이 10월 17일 밤에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였다. 시위 당일과 다음날에 걸쳐 200여명이 사망(당시 프랑스 경찰 발표는 단 3명)하고 많은 부상자와 2,500여명이 체포된 학살이 파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것이다. 결국 62년에 들어서야 에비앙 합의를 통해 알제리는 독립을 얻게 된다.

68혁명의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해 반대를 해서 체포된 대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시작되었고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겹치면서 큰 규모로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드골대통령과 CRS(공화국보안기동대) 등의 비난들이 포스터에 계속해서 표현된 것은 알제리전쟁이 5월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프랑스 언론을 포섭해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 당시 정권에 반대해 ORTF(프랑스 라디오-텔레비전 방송국)가 68년 5월 전면 파업을 하게 되어서 프랑스에서의 매체가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벽보나 광장 등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된다. 이를 두고 문종현 교수는 그의 논문, “1968년 5월 말의 장악 – 민중공방 포스터를 통해 본 68년”에서  “시민, 학생, 노동자들이 말을 장악하는 독특한 사건”이라고 칭한다. 언론이 대신 전하는 말이 아니라 광장에서, 벽의 낙서에서, 유인물이나 포스터에서 하는 그들의 말이 도처에서 성행했기 때문이다.

민중공방은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기존의 예술가를 노동자들로부터 격리시키는 부르주아 문화를 비판하며 예술가도 역사적 현실의 지배를 받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민중공방의 이런 생각은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미 이전의 ‘청년회화협회’와 미술의 대중화를 주장했던 GRAV같은 예술운동이 있어왔고, 그것이 5월혁명과 맞닿으면서 발생했다.

atelierpopulaire2-1024x728.jpg 당시 민중공방 모습. (출처. http://spinsandneedles.com/stuff/2012/03/01/atelier-populaire-renegade-print-workshop/)

한 가지 눈여겨봐야할 것은 민중공방의 작업방식이다. 예술가가 선전수단의 오퍼레이터로 작업한 것이 아니라, 그날 그날 모여 정치적 사건을 분석하고 주제를 결정해서 도안 작성 및 결정, 포스터 제작 등 작가들이 포스터 제작의 전 과정에 함께 참여해서 제작되었다. 이는 곧 예술가 자신들의 메시지도 담아 정치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로, 마우드 라빈의 저서에서 이야기했듯 지금의 디자이너들이 좀 더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과 맞닿아 있다.

usines universites union.jpg “공장, 대학, 단결” (출처. http://katharinejwright.com/scholarship/)

이들의 첫 포스터는 ‘공장, 대학, 단결’이란 구호로만 되어 있는 포스터였다. 선전수단으로서의 포스터 역할을 해야했기에 보다 선명한 타이포와 간단한 이미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인쇄용 글꼴을 사용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손글씨를 사용해서 메시지의 진실성을 전달하고 있다.

포스터의 주제는 주로 당시 드골정부에 대한 고발과 노동파업에 대한 지지, 경찰 공권력 남용에 대한 비판이었다. 특히 당시 ORTF의 파업을 지지하는 포스터들이 눈에 띈다.

The police will speak to you every evening at 8 pm.jpg “경찰은 매일 저녁 8시에 너에게 말할 것이다.” 프랑스 국가의 언론통제에 대한 비판 (출처. art of resistance)

May 1968 The start of a long struggle.jpg “1968년 5월, 긴 투쟁의 시작.”  (출처. art of resistance)

the vote changes nothing.jpg “선거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선거에 대한 불신 (출처. art of resistance)

_wsb_505x598_jeparticipe.jpg “나는 참여한다. 너는 참여한다. 그는 참여한다. 우리는 참여한다. 당신은 참여한다. 그들이 이익을 챙긴다.” 선거에 대한 불신

lot-322215.jpg “나는 투표한다. 너는 투표한다. 그는 투표한다. 우리는 투표한다. 당신은 투표한다. 그들이 이익을 챙긴다.” 선거에 대한 불신 (출처. http://www.piasa.fr/)

border-repression.jpeg “경계선 = 억압” 경찰에 대한 불신 (출처. art for a change)

c21de5cd6be87fdc5fbddbd577ff1e46.jpg공화국보안기동대(CRS)를 나치친위대(슈츠스타펠, SS)로 표현 (출처. art for a change)

we are the power.jpeg“우리는 권력이다.” 노동자들의 연대 (출처. art for a change)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커다란 주제들이 있고, 그 주제들이 가르키는 대상들은 각각 기호화되어 단순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가령 포스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인, 당시 집권자였던 ‘드골’은 종종 큰 코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히틀러의 모습으로 나오기도 하다. 그리고 CRS는 나치친위대로 묘사하고, 마스크 속에 얼굴을 가린 인간이 아닌 존재로 묘사된다.

2006BB5384.jpg 출처. http://collections.vam.ac.uk/item/O120947/poster-atelier-populaire/

그리고 시민이나 학생, 노동자는 개인의 모습보다는 집단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공장, 스패너, 작업복으로 상징화된다.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프랑스에 이런 어두운 그늘은 의외였고, 그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의 연합도 놀랍다. 60년대의 프랑스와 다름없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 크다.


참고자료.
문종현. “특집논문-역사와 이미지: 시각적 역사: 1968 년 5 월 말의 장악-민중공방 포스터를 통해본 68 년.” 서양사론 126.단일호 (2015)
배소현. “그룹 운동을 통해 본 년대 1960-1970 프랑스 미술의 정치성.”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33 (2010)
안영현, and 김지혜. “프랑스 68 운동과 미술의 변화.” 프랑스문화예술연구 7.1 (2005)
김지혜. “프랑스 68 혁명과 예술운동.” 마르크스주의 연구 5.2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