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보담 issue 18 가을 숲오봉 저수지 / 이미지. 『보보담』, Issue 18, Autumn 2015

그때 언뜻 깨달은 것은 어쩌면 그 잎들이 1년내 스스로 뒤집어쓰고 있었던 허물과도 같다는 것이다. 후에 불가의 경전을 읽을 일이 있었는데 『대반열반경』에 이런 말이 있었다. “사라림 가운데 한 나무가 있어 백 년이나 된다. 그 나무가 마르고 껍질과 잎이 모두 떨어져 오직 진실만이 남았다.” 곧 가을이 깊어서 수수해진 숲은 갖은 치장으로 치부를 가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낸 것이라는 말이다.

구자열, 『보보담』, Issue 18, Autumn 2015 ‘편집실에서’ 중


멋진 말이다. 그냥 낙엽이 떨어져 춥고 헐벗게만 느껴졌던 나무들이 문득 반짝이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허물을 벗고 비로소 ‘자신’과 맞닥뜨리는 계절, 가을.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계절.

내 아이는 자꾸 가을나무들을 보고 “옷을 입고 있지요~”라는 표현을 쓴다. 처음엔 몇번 아이에게 “옷을 벗는거야.” 라고 수정해주었다가, 지금은 나도 “응, 그래. 새로운 옷을 입고 있는거야.” 라고 답해준다. 가을은 낙엽이 떨어져서 헐벗은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가지들이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런 걸 보니, 난 아이의 눈보다도 못하다.

ps. 이번에 보보담에 담긴 가을은 낙엽들이 전면페이지로 가득가득 떨어져있다. 거기에 ‘강릉’을 주제로 관광책자에서나 볼 듯한 글들이 아닌, 강릉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가 녹진하게 스며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