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walk 블로그에 얼마 전 도시의 아이덴티티와 관련된 포스트가 올라왔다. 요새 트렌드라 보여지는,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는 플렉서블 아이덴티티(flexible identity)에 대한 글이었다. CI라는 것은 협소한 의미로 어떤 특정기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확장성’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라는 성격은 어느 하나의 것으로 규정짓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과 사건과 조직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기 때문에 이 블로그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기본적인 아이덴티티 형태만을 가진 채 조직이나 사람,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용하는 모습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

 

slowalk의 블로그 포스트 :
도시의 이미지가 움직인다! 플렉서블 도시 아이덴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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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의 글에는 다양한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소개해주고 있다.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아이덴티티는 landor사가 디자인한 city of Melbourne이다. 이것이 발표될 당시 몇년 전에 처음 봤을 땐, 과히 충격이었다. 단순한 도형을 가지고 수십개의 아이덴티티로 다시 확장되다니 . 이건 마치 멜번시의 예전 아이덴티티와 같은 생각을 나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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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멜번시의 아이덴티티와 산하 기관들의 로고들이다. 이게 당연했다. 통합이나 일관성을 도시의 아이덴티티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나였다. 도시는 도시대로 아이덴티티를 가져가고, 산하기관이나 행정조직은 조직대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 비교를 하기 전까지는 이게 얼마나 조잡하고 일관성이 없고 무엇보다 정체성을 상실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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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형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더니 전혀 엉뚱하게도 아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일관성있게 도시와 산하기관들, 행정조직들의 아이덴티티가 정리가 되었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런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열어준 것이 멜번시의 아이덴티티였다.

역시 그렇기 위해선 기본적인 아이덴티티의 조형이 단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할수록 담을 수 있는 양은 많아진다. 장식할 수 있는 여지도 늘어난다. 그리고 다시 단순한 형태의 아이덴티티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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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하지만 동일하지 않다. 1세 때의 나, 5세때의 나, 지금의 나의 외형(조형)은 달라져있지만 ‘나’라는 정체성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에 굳이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들어 이야기하자면 자끄 데리다의 ‘디페랑스(차연)’개념과도 맞닿아있지 않을까?

아래는 멜번시의 아이덴티티와 관련한 영상물과 비록 베이직시스템만 나와있긴 하지만 issuu에 올라온 city of Melbourne의 CI manual이다.

 

 


사실은 이와 관련해서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은 ‘Know Canada’에 대한 이야기였다. 플렉서블 아이덴티티에 대한 포스트를 읽으면서 이 캠페인도 함께 설명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now Canada’는 조형요소 자체가 변하지 않는 점에서 위에서 보는 여타의 플렉서블 아이덴티티와는 좀 다른 위치에 있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조형이 아닌, 그 배경이 바뀌게 되면서 무한대의 확장성을 가지게 된다. 또한 사용자의 경험과 맞물려 아이덴티티의 친숙함 또한 높여주고 있다.

‘Know Canada’는 Bruce Mau Design 회사에서 2012년에 진행한 캠페인이다. 제작 의도는 ‘캐나다’하면 항상 떠오르는 메이플시럽, 비버 등이 아닌 전 세계에 소개할만한 캐나다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아이덴티티를 개발했다. 근데 멜번시와는 다르게 아주 단순하다. 그들의 국기에서 가운데만 빼고 그 가운데에 캐나다의 그 무엇이 들어가도 이게, 캠페인이 된다. 무한대의 확장이 가능하다. 조형이 변화하진 않지만 배경이 바뀌게 되면, 그 어디나 색다른 느낌, 이야기를 가진 아이덴티티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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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의 포토월조차도 로고로 범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빨간 막대 두 줄만 그어놓으면 그게 아이덴티티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Know Canada’ 사진을 찍어주는 포토앱도 나와있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아이덴티티라는 것이 복잡하고 어렵고 현학적으로 보일 때도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명쾌하고 뻥 뚫리듯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발견될 때도 있는 법이다. 이런 노력들이 모이다 보면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정체성이라는 것들을 만들어가게 된다.

이 아이덴티티의 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KnowCanada.org 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사용자들의 경험까지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포토앱으로 찍은 사진들을 갤러리로 만들어놓아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Know Canada’ 아이덴티티가 가진 힘이라고 본다. 멋진 조형과 컨셉 등보다 중요한 건 대중에게 얼마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이덴티티의 출발 역시 그런 친숙한 기업이미지들을 어필하기 위해 생겨난 것들이 아닌가. 그런데 아이덴티티가 어느새 사용자들의 놀이감이 되어있다. 그리고 그 놀이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공통분모를 형성해가고 있다.

 

know canada.jpgKnowCanada.org